윤여정 “아카데미가 날 변화시키지 않아…나로 살다 죽을 것”

오경민 기자
배우 윤여정. 애플tv플러스 제공.

배우 윤여정. 애플tv플러스 제공.

“난 너무 힘들게 살고 힘들게 촬영하기 때문에 다른 순간엔 웃고 쉬고 싶어요. 그 장면을 찍을 때만 진지하면 되지, 나중에 감독이랑 막 진지하게 토론하고 그런 거 너무 스투핏(stupid). 연기는 토론이 아니라, 유 저스트 두 잇 데어(You just do it, there·그냥 거기서 하는 것).…어떤 사람은 그래서 날 싫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날 좋아하고. 그게 세상이죠, 뭐.”

애플tv플러스의 새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 공개를 앞두고 18일 오전(한국시간) 진행된 비대면 인터뷰에서 배우 윤여정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답변했다. “나 왜 자꾸 영어쓰니”하면서도 “여기 와서 계속 영어를 써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윤여정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파친코> 관련 일정을 소화중이다.

오는 25일 공개되는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나 일본, 미국을 오가야 했던 여성 ‘선자’를 중심으로 4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를 그린다. 윤여정은 부산 영도 출신이지만 일본에 산 지 50년이 넘은 할머니 선자를 연기했다. 손자 솔로몬 백 역할을 맡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진 하(Jin Ha)와 주로 호흡을 맞췄다.

선자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가족을 부양하게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냄새난다’는 조롱과 비난을 들으면서도 김치를 만들어 파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윤여정은 이에 대해 “원래 막 살아남으려고 일을 할 때는 힘든 일인지 아닌지 모른다. 다른 선택지가 없고,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라며 “남편도 곁에 없고 일본말도 할 줄 모르는 여자(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김치 만드는 일밖에 없을 것이라고 해석했다”고 했다.

윤여정은 <파친코>에서 일본에 수십년을 산 한국인 선자를 연기했다.  애플tv플러스 제공.

윤여정은 <파친코>에서 일본에 수십년을 산 한국인 선자를 연기했다. 애플tv플러스 제공.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없는가’라는 질문에는 “사실 나는 인종차별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도와주는 이들은 다 미국인이었고, 내가 당시 직장에 다닌 것도 아니라 몰랐다”며 “그런데 우리 아들, 딱 진하 나이 친구들이 그런 걸 많이 느낀다고 하더라. 한국말 못하니까 한국에 와도 이상하고, 미국에서도 생긴 게 이러니까 이러고(차별받고), 참 국제고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프로젝트 할 때 참여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다 우리 아들 같은데 뭔가 만든다고 하면 내가 도와줘야지 하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나리>도 그래서 한 거다. 그 말도 안 되는 돈(개런티)을 받고서…나 그거 안 해도 됐거든. 사람 마음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작품이 일본에 사는 이민자 가족을 다룬 만큼 재일동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윤여정은 전했다. 그는 “그전에는 ‘자이니치(재일동포를 이르는 말)’라는 말이 낮잡아 보는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랑스러운 말이라고 하더라. 일본 사람이 되지 않고 한국인으로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어렸을 때 ‘조총련’이라 하길래 북한과 관계된 줄로만 알았는데 당시 자이니치가 한국말을 배우려면 조총련 학교를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촬영하면서 가슴이 아팠고 많이 배웠다”고 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파친코> 시사회에 참여한 배우 윤여정. 애플tv플러스 제공.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파친코> 시사회에 참여한 배우 윤여정. 애플tv플러스 제공.

부산 사투리 연기는 별다른 도움 없이 연기했다고 한다. 그는 “<그것만이 내 세상> 때 사투리를 배우는 데 집중하느라고 연기를 망쳤다. 어차피 ‘원어민’처럼 할 수는 없다”며 “선자는 10대 때 일본에 와 이미 수십 년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말을 잊어버려 이상한 억양이 됐을 거라고 해석했다. 사투리 코치가 알려주려고 할 때 ‘내버려 두라’고 했다. 늙은 배우이기 때문에 그런 말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미나리>를 비롯해 대한민국 콘텐츠가 윤여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소감을 부탁하자, “처음에 <파친코>를 찍을 때는 여러분들이 저한테 관심 없을 때였다. 그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기 전이다. 한국 콘텐츠가 나를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바보가 아니다”라며 농담했다.

아카데미 수상 이후 달라진 건 없다고도 했다. 그는 “똑같은 친구랑 놀고 똑같은 집에 살고 있다. 하나 감사한 건, 만약 진하 같이 젊은 나이에 수상했으면 둥둥 떠다녔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이에 감사해보긴 처음이다”라며 “받는 순간에는 기쁘지만 상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나로 살다 죽을 것이다. 봉준호(감독)가 아카데미에 노크를 했고, <미나리>가 우여곡절 끝에 올라가 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냥 운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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