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 잡힌 ‘109살 한국 예술의 요람’ 단성사는 웁니다

이재덕 기자

일제 강점기시대 한국 예술의 요람이자 국내 최초 상설영화관인 ‘단성사’. 최근 단성사 건물을 담보로 잡고 있던 은행이 대출금 회수 절차에 들어가면서 단성사가 경매 매물로 나왔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만해도 단성사는 조선 최고의 극장이었다. 단성사의 전성기 모습은 어땠을까.

1955년 단성사 모습

1955년 단성사 모습

1907년 설립 당시만 해도 단성사는 판소리·민요 등을 공연하는 곳이었다. 단성사를 영화의 요람으로 만든 이는 1918년 단성사를 인수한 박승필이었다. 박승필이 직접 제작한 한국 최초의 영화(키노드라마)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신파극단 ‘신극좌’를 이끌던 김도산이 감독·각본·주연을 맡았고 극단 단원들이 배우로 활약했다. 키노드라마란 연극을 하다가 연극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부분을 활동사진으로 상영하는 초기 형태의 영화를 말한다.

1919년 10월 27일.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첫 상영될 당시 매일신보는 단성사에 물밀듯이 들어서는 인파에 대해 ‘쵸저녁부터 도쇼갓치 밀니는 관객 남녀는 삽시간에 아래위층을 물론하고 빡빡히 차셔 만원의 패를 달고 표까지 팔지 못한 대셩황이 잇더라’(매일신보, 1919년10월29일자)라고 표현했다.

1940년 일본잡지 ‘모던일본 조선판’에 표지모델로 등장한 당대 최고 여배우 문예봉. 문예봉 주연의 영화 ‘춘향전(1935년)’이 단성사에서 개봉, 흥행에 성공했다.

1940년 일본잡지 ‘모던일본 조선판’에 표지모델로 등장한 당대 최고 여배우 문예봉. 문예봉 주연의 영화 ‘춘향전(1935년)’이 단성사에서 개봉, 흥행에 성공했다.

단성사의 박승필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한국 영화계는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에서 빛을 보게 된다. 1926년 10월 단성사에서 개봉한 ‘아리랑’은 일제치하에서 조국을 잃은 조선 민중들의 설움을 대변했다. 이후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인 ‘춘향전(1935년)’도 단성사에서 개봉,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춘향’으로 분한 문예봉은 일제치하 최고의 배우였다가 해방 뒤 월북해 북한의 인민배우가 됐다.

단성사에서 ‘황성옛터’를 부른 이애리수

단성사에서 ‘황성옛터’를 부른 이애리수

이후 단성사는 조선극장, 우미관과 함께 대중 문화 공연장으로 활용됐다. 주로 영화·연극·음악·무용발표회 등이 열렸다. 1930년대 최고의 가수였던 이애리수는 1932년 단성사에서 나라잃은 슬픔을 담은 ‘황성옛터’라는 노래를 단성사에서 처음으로 불렀다. 황성옛터의 작곡가는 전수린, 작사가는 왕평 이응호였다. 1983년 출간된 ‘가요야화 60년사’에는 당시 모습에 대해 “이애리수가 서울 단성사에서 노래를 하였는데 망국의 설움이 폭발하였다. 울어대는 관객을 제지하기 위해 일본 순사가 호루라기를 불며 공연을 중단하였고, 전수린과 왕평은 종로경찰서에 끌려간 뒤 아침이 되어서야 풀려나왔다”고 묘사했다.

단성사는 권투 경기가 처음으로 열린 곳이기도 하다. 격투기를 좋아했던 박승필 등이 1912년 10월 유각 권투 구락부를 창설했고 이곳에서 복싱이 첫 선을 보였다. 권투 구락부는 단성사에 사무실을 두고 복싱, 유도, 씨름 등 3개 종목의 경기를 치렀다. 당시 구락부가 소개한 복싱은 체육 보급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정식 규칙으로 치러진 최초의 권투경기는 1928년 6월 종로 YMCA에서 개최된 ‘전조선 권투선수권대회’였다.

1993년 7월 영화 ‘서편제’를 보기 위해 단성사에 몰린 인파

1993년 7월 영화 ‘서편제’를 보기 위해 단성사에 몰린 인파

단성사는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의 명맥을 이어갔다. 겨울여자(1977년), 장군의 아들(1990년), 서편제(1993년) 등이 단성사에서 단독 개봉했다. 특히 서편제는 단성사에서 1993년 4월10일 개봉돼 10월22일 종영하기까지 194일 동안 상영됐다. 서편제는 국내 개봉관 최장 상영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무문, 터미네이터 등 유명 외화도 당시 단성사에서 개봉됐다.

1977년 3월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속정무문(왼쪽), 1984년 12월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터미네이터(오른쪽). 당시 경향신문 광고

1977년 3월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속정무문(왼쪽), 1984년 12월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터미네이터(오른쪽). 당시 경향신문 광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등장하면서 단성사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01년에는 건물이 헐리고 신축공사를 거쳐 지상 9층, 지하 4층 규모 스크린 7개를 가진 멀티플렉스가 됐다. 하지만 관객들의 발걸음을 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과거 단성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08년 최종 부도 처리된 멀티플렉스 단성사 건물

2008년 최종 부도 처리된 멀티플렉스 단성사 건물

단성사는 2008년 최종 부도처리 됐다. 단성사는 이후에도 한동안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운영됐지만 아산M그룹이 단성사 건물을 인수한 뒤 보석전문상가로 만들기로 하고 대규모 리모델링을 다시 시작했다. 영화의 요람 단성사의 맥은 그렇게 끊겼다. 2012년 단성사 건물은 외부공사를 끝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내부 공사는 중단된 채 여전히 빈 건물로 남아있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서울 종로구 묘동 단성사 빌딩에 대한 3회차 경매가 열렸지만 입찰자가 전혀 없어 유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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