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바다거북에게 구조된 한국 선원

김기범 기자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1년 3월 2일 바다거북에게 구조된 한국 선원

30년 전인 1991년 3월 2일 경향신문에는 ‘바다실족한 한국 선원 거북 등 타고 목숨 건져’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기사를 아래에 옮겨보겠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치타공항 남쪽 130㎞ 벵골만 해상을 항해 중이던 한국 어선 메이스타호의 선원 임강용씨(28)는 지난달 22일 새벽 갑판에서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떨어졌으나 이 배의 동료들이 6시간 만에 거북이 등을 타고 표류하고 있던 임씨를 발견, 그물이 달린 기중기로 임씨와 거북이를 바다에서 구조해 화제.

임씨는 치타공항에 도착한 후 “거북이가 무척 우호적이었으며 나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면서 “거북이를 올라타고 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 거북이가 계속 바다 위를 떠다닌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고 있어 구사일생으로 살았다”고 체험담을 토로.

2015년 10월 28일 부산에서 고향 바다로 돌아가고 있는 푸른바다거북.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2015년 10월 28일 부산에서 고향 바다로 돌아가고 있는 푸른바다거북.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1991년 2월 22일 실족 사고를 당했으나 다행히도 바다거북을 만나 목숨을 건진 임씨는 같은해 2월 27일 한국으로 귀국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조양상선 소속 화물선 메이스타호의 갑판원이었던 임씨는 영국 리버풀항에서 밀을 싣고 방글라데시 치타콩으로 가던 중 갑판 청소를 하다 갑작스런 파도에 실족해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는 메이스타호간 이동한 방향으로 헤엄을 쳤으나 채 10분도 못 돼 피로와 추위에 기진맥진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사력을 다해 헤엄치던 임씨는 어느 순간 자신이 물 위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길이가 1m나 되는 바다거북이 그를 떠받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이스타호 선원들은 임씨가 사라진 것을 알고 망원경으로 주변 바다를 살피다가 임씨가 바다에 떠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동료 선원들은 구명보트를 내려 임씨와 바다거북을 갑판 위로 올렸습니다. 선원들은 갑판 위가 뜨거워 바다거북에게 해로울 것으로 여겨 조그마한 쌀주머니를 바다거북의 목에 걸어준 뒤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임씨는 귀국 후 부산의 종합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았고, 다행히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와 고향인 거제 칠천도에 도착해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임씨의 마을에서는 임씨가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면서 조촐한 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씨가 기적적으로 생환하기 22년 전인 1969년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한국인 선원이 있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기적적인 사건에 대한 1969년 8월 25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아래에 옮겨보겠습니다.

남미의「니카라과」근해를 항해 중이던「리베리아」화물선의 한 한국인 선원이 갑판에서 실족, 바닷속으로 떨어져 익사할 뻔했으나 거대한 거북이의 잔등에 매달려 15시간이나 표류한 후에 그가 타고있던 화물선에 의해 다시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고 24일 이곳에서 알려졌다.

신원이 밝혀지지않은 이 한국선원의 구출 상보는 화물선「시터덜」호의 선장「호르스트·워더」씨가「쉬든」인 선주 앞으로 보낸 전문에 의해 비로소 밝혀진 것이다.

이 한국 선원이 바다에 떨어진 지 15시간이 지난후에 마침 「로샌절러스」를 향해 북상 중이던「시터덜」호의 망대(望臺) 당번이 해상에 사람의 머리가 떠있는 것을 보고 선수를 그쪽으로 돌림으로써 이 한국 선원은 기적적으로 다시 생명을 건지게 된 것이다.

익사직전 커다란 거북이의 등에업혀 기적적으로살아난 김정남씨(왼쪽 첫번째)가 그를 구해준「쉬돈」화물선「시타델」호의 선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들에게 기적적인 생환 경험담을 말하고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익사직전 커다란 거북이의 등에업혀 기적적으로살아난 김정남씨(왼쪽 첫번째)가 그를 구해준「쉬돈」화물선「시타델」호의 선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들에게 기적적인 생환 경험담을 말하고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같은해 9월 1일자 경향신문에는 김정남씨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기사도 게재됐습니다. 아래에 당시 기사를 옮겨보았습니다.

거북의 등에 매달려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건진 한국선원 김정남씨(27·부산·「리베리아」화물선「페트럴나가리」호선원)가 그를 구해준 「쉬든」화물선 「시타델」호편으로 30일 상오 8시 반(한국시간)「로샌절러스」의「터미널·아일런드」232부두에 내렸다.

金씨는 배회사의「도꾜」(東京) 대리점과 연락이 되어 곧 귀국, 다시「리베리아」 화물선에 타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육지에 발을 다시 딛고 김치찌개를 처음으로 먹었다.

金씨는 16시간 반이나 바다에 표류했다가 기적같이 살아난 이야기를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의 기자들 앞에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지난 23일 새벽 2시쯤 그의 배「니카럴나가라」호는 중미 「페트라과」근해를 항해 중이었다. 동급 선원 5명과 마신 일제 위스키가 너무 주기가 올라 혼자 갑판에 올라갔다가 갑자기 배가 흔들리면서 실족, 칠흑의 바다에 내동당이쳐졌다.

바다에 떠있기를 10여시간, 기진맥진한 김씨의 눈앞에 바윗더미같은 게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 근해에 많다는 상어인 줄 알고 이젠 죽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좀 이상했다. 무턱대고 오른팔을 걸쳐 기어올랐다. 길이1m, 목덜미의직경이 15㎝, 네발이 어른 팔의 3분의 2는 되는 커다란 거북이었다.

거북이 물에 가라앉을까 걱정하며 어깨를 두 팔로 감싼 채 매달리고 하반신은 물에 띄운 채 딸려갔다. 때때로 가만히 멎어 등을 두드려 움직이게 했다. 이러기를 약 2시간. 이 사이에 짙은 안개를 벗어났다. 멀리 지나가는 배가 보였다.「시타델」호. 한손으로 거북의 어깨를 안은 채 배를 향해 한손을 높이 쳐들어 있는 힘을 다해 고함쳤다. 배에서는 구명보트가 내려지고 갑판에 올라서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2018년 4월 실시된 바다거북 부검 당시 바다거북의 소화기관에서 나온 비닐 재질의 대북전단. 김기범 기자.

2018년 4월 실시된 바다거북 부검 당시 바다거북의 소화기관에서 나온 비닐 재질의 대북전단. 김기범 기자.

멸종위기 해양파충류인 바다거북의 수명이 100년이 넘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선원들을 살렸던 바다거북들도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바다거북들은 최근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먹은 바다거북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거북의 먹이와 비슷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바다거북들이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습니다. 바다거북은 사람들을 살렸지만 사람들은 배은망덕하게도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 선원들을 살렸던 바다거북을 포함한 해양생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 배출 원칙을 잘 지키는 등의 작은 실천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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