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삭감 그대로!’ 윤 대통령 시정연설에 과학계 ‘부글부글’

이정호 기자

과학계 “꾸준히 반대했는데 정부 입장 변화 없어”

“R&D 줄여서 복지 증액 연계성도 의아해”

다음 달 국회 심의에서 집중 문제 제기 예정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방침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하자, 예산 심의 때 증액을 기대해온 과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는 내년 정부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나 줄인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고, 이날 윤 대통령이 이런 방침을 못 박은 모양새다. 과학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표명한 ‘R&D 예산 삭감 반대’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비판하고 나서, 향후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갈등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양적으로 10조원이나 대폭 증가했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질적인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R&D 예산은 민간과 시장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하기 어려운 기초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역량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며 “이번 예산안에는 첨단 인공지능(AI) 디지털, 바이오,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강조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시정연설에 대폭 삭감한 내년 정부 R&D 예산안을 고수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한 과학계에서 지난 8월 이후 R&D 예산 삭감이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냈지만, 사실상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격이다.

이어확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는 “정부는 (R&D 예산 삭감을 추진하는 논리로) 비효율적 관리 체계를 얘기하지만, R&D 예산을 수조원 줄여야 할 정도의 분명한 문제 사례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과기정통부에서 최근 과학계 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얘기도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R&D 예산 삭감은 지난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학계와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R&D 분야가 ‘카르텔’이 있는 곳으로 지목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기획재정부의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정부 R&D가 올해와 같은 31조원대로 회복되는 것은 2027년이다.

이날 윤 대통령이 R&D 예산을 삭감해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일단 이번에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3조4000억원은 약 300만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 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데 배정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액수인 ‘3조4000억원’은 과기정통부가 관리하는 내년 ‘주요 R&D 예산’ 삭감액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가 이공계 대학 지원 등에 배정하는 ‘일반 R&D 예산’까지 포함한 삭감액은 5조2000억원이다.

이 공동대표는 “복지 예산을 늘리는 일은 R&D 예산 삭감과는 별도로 가는 것이 온당하다”고 강조했다. ‘R&D 예산을 빼서 복지 분야로 이동시키니까 괜찮은 일’이라는 인식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대회의 등 과학계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R&D 예산 삭감의 부당성을 적극 알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R&D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줄었다며 정부에 삭감 이유와 논리를 따져 묻겠다는 태도다. 이에 R&D 분야 예산 심의가 향후 여야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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