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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 딥페이크 처벌법 만든 고위공직자들의 안이한 현실인식

심윤지 기자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유통 행위를 처벌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지난 17일 공포됐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특정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합성·편집한 가짜영상이다. 이 개정안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성범죄 방지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후속조치로,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유통을 처벌하는 개정 성폭력 특례법이 통과된 지난 5일 오후 국회 본회의 모습. 연합뉴스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유통을 처벌하는 개정 성폭력 특례법이 통과된 지난 5일 오후 국회 본회의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 결과, 국회 법제사법위원들과 고위 공무원들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안이한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피해자 관점에서 유출 방지 대책을 고민하기보다, 가해자 관점에서 과잉 입법을 막으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지난 3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제1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반포 등을 목적으로’ 한 합성물 제작만 처벌할지가 쟁점이 됐다. 회의 초반 법사위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처벌 구성 요건에 ‘반포 등 목적이 있는 경우’를 추가하고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합성물은 목적에 관계없이 처벌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갔다. 조문을 다듬는 과정에서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반포할 목적이 아니어도 딥페이크로 (피해자의)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참석자 다수는 회의적이었다.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정점식 미래통합당 의원),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김오수 법무부 차관) 등 발언이 이어졌다. 개인 소지 목적의 영상 제작까지 처벌하다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착취 영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여성들의 우려는 소수였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제작된 영상이 해킹 등으로 의도치 않게 유포된 경우 제작자는 아무 죄도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의견을 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냐”고 했고 미래통합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과 김 차장이 동의했다.

딥페이크 처벌 통과 계기가 된 국회 국민동의청원

딥페이크 처벌 통과 계기가 된 국회 국민동의청원

개정안은 딥페이크 영상도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성폭력으로 간주하고 처벌 규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기존 형법에도 ‘음란물 유포’나 ‘명예훼손’ 처벌 규정이 있지만, 딥페이크는 새롭게 등장한 범죄 유형이기 때문에 처벌 요건을 맞추기가 까다로웠다. 피해자가 받을 정신적 충격에 비해 처벌 수위도 낮았다.

그럼에도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심각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디지털상에서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 유통, 소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반포 목적’으로만 제한할 경우 처벌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에 따르면, 텔레그램에는 ‘지인 제보 능욕방’이란 유형의 대화방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지인 사진을 올리면 ‘방장’이 음란물과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해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이때 의뢰자는 사진이나 영상을 직접 제작해 유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딥페이크 영상은 수백명이 모여있는 단체방에서 피해자 신상과 함께 공유되는 경우가 많다. 유포, 재유포를 하나하나 처벌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신하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디지털 성착취물은 소비 자체에 피해자에 대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상물 제작을 개인의 표현의 자유로 무한정 인정할 수 없다”며 제작 목적에 상관없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디지털 성범죄, 손 맞잡고 ‘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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